"기업 기밀사항 공개 강요, 거래처 수천 곳에 제품 1개여도 일일이 등록해야"
의료기기업계 대부분 영세 업체…현실적 적용가능한 제도 개선 필요
[메디파나뉴스 = 박선혜 기자] 최근 업계가 3등급 의료기기에 반영되기 시작한 '의료기기 공급내역 보고' 제도에 "현실적으로 반영이 어렵다"며 불만의 목소리를 제기하고 나섰다.
전반적으로 영세 업체가 대부분인 의료기기 산업에 매일 이뤄지는 수백-수천개의 공급내역을 작성하고 관리하기엔 시간‧인력 부담이 크고 내용 자체에 기업의 기밀사항을 기재하도록 돼 있어 거부감이 크다는 것이다.
업계에 따르면 공급내역보고제도가 최근 3등급에도 반영되면서 이전 4등급 의료기기 때에는 드러나지 못한 문제점이 발생하기 시작했다.
의료기기 공급내역보고 제도는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유통구조 투명성 및 위해제품 투명성을 높이기 위해 지난해부터 시작한 제도로, 위험도가 높은 4등급 의료기기부터 반영해 3등급(2021년 7월), 2등급(2022년 7월), 1등급(2023년 7월)까지 단계적으로 시행된다.
주요 내용은 ▲공급자 정보 ▲거래처 정보 ▲제품정보(표준코드를 통한 품목명, 모델명, 로트번호 등) ▲공급정보(일시, 수량, 단가(의료기관 공급시))이다.
의료기기 제조업자, 수입업자, 판매업자, 임대업자가 보고 의무자에 해당하며 만약 공급내역을 보고하지 않은 경우 판매업무 정지 15일 및 과태료 50만원 처분을 받게 된다.
◆ 문제1. 업체 기밀 사항 노출 요구…간납사 책임전가 문제도
업계의 '거래처 및 납품 금액'은 엄연히 기밀사항으로 관리되고 있지만 공급내역보고서에는 이같은 사항을 필수 보고 항목으로 지정하고 있다.
A의료기기업체 관계자는 "기업 생존과도 직결되는 민감한 정보인 제품단가, 거래처, 공급량이 필수 보고사항으로 포함돼 있다"며 "업체 내부적으로도 기밀사항으로 관리하는 정보를 보고해야하는데, 이런 정보들이 노출될 경우 거래처 불만 및 경쟁업체 견제로 인해 기업 운영에 심각한 타격을 줄 수 있다. 특히 영세업체 경우 폐업까지 고려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고 토로했다.
이 같은 문제제기는 초기 제도 성립 단계에서도 업계와 협회의 큰 반발을 일으킨 바 있다. 유통 경로를 확인하겠다고 도입한 취지에 단가와 금액을 공개토록 하는 것은 합리적이지 않다는 의견이다.
또한 제도를 통해 정부가 치료재료 실거래가 조사를 통한 가격인하 툴로서 의료기기 UDI 시스템을 악용하겠다는 것이 아니냐는 의견이 제기되기도 했다.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중간업체 및 종합병원 간납사가 실제 보고 업무 떠넘기기 등 일명 '갑'질을 하는 사례도 있다는 것이다.
B의료기기업체 관계자는 "거래 관계에서 '갑'인 업체와 종합병원들이 '을'인 제조,수입업체에게 보고 업무를 떠넘기고 있다. 실제 중간업체에서 회사 아이디를 알려주고 영업사원에게 올리라는 식으로 나오고 있다"고 언급했다.
이어 "공급내역 보고 주체를 명시하도록 제도가 보완되더라도 중간업체나 병원에서 거래처 변경 및 발주수량을 빌미로 자사 공급내역 보고 업무를 요구하면 현실적으로 제조, 수입업체 영업사원들은 거부하기 힘들다"며 "문제가 발생했을 때 대금결제 지연 및 벌금 대납 등과 같은 책임전가도 이뤄져 제도 보완만으로는 해결되기 힘들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더불어 보고를 위해 계정을 공유하거나 공급 자료를 전달하는 과정에서 업체들의 기밀사항이 동의없이 무방비로 노출되는 상황이 발생하면 업체들간 경쟁사 단가, 공급량을 확인하는 방법으로 악용될 우려도 있다.
◆ 문제2. 다품목 취급업체 업무 가중…"추가 인력, 비용 감당 안돼"
현재 공급내역 보고 시, 품목별로 일련번호, UDI코드, PI코드 정보, 단가 등과 같은 정보가 모두 다르고 같은 품목에서도 UDI 코드 등이 구분되기 때문에 이를 확인하고 공급/납품일자까지 구분해 파일을 작성해 보고해야 한다.
또한 기존 ERP 프로그램 등을 사용해 공급내역을 관리하는 업체는 기존 공급내역 관리 업무에 추가적으로 통합정보시스템을 등록하는 업무를 하게 돼 중복으로 업무를 처리해야 한다.
A의료기기업체 관계자는 "모든 거래처의 제품 단가, 공급금액, 수량 등 언제 나갔고 어떻게 나갔으며 반품될 경우 반품수량까지도 등록해야 한다. 2~3등급 의료기기 업체 경우 재료, 렌즈와 같은 낱개, 다품목 제품이 많아 수량이 만만치 않고 거래처도 의료기관 외에도 기관, 편의점, 안경점 등 몇 천, 몇 만곳이나 되기 때문에 업무 과중이 심하다"고 말했다.
이어 "영세업체가 대다수에다 코로나19로 어려워진 회사들이 사람도 못 구하는 실정에 모든 직원이 정상업무도 못한 채 일에 매달려야 하는 상황이다. 추가 인력과 비용을 현실적으로 해결하기 어렵다"며 "식약처에 건의해봤지만 지금은 어쩔 수 없다는 설명만 돌아왔다"고 호소했다.
이 외에도 공급내역보고를 위해 거래처를 등록하는 과정에서 이용되는 '의료기기통합정보시스템'도 거래처를 한 곳씩 검색하고 등록해야 하기 때문에 대리점 체제가 아닌 직납 체제 업체 경우 거래처가 수천 곳이 넘어 등록하는데 상당한 시간이 소요되고 있다.
또 안경렌즈 및 콘택트렌즈를 안경업소에 공급할 경우 공급내역 보고대상에서 제외되는 등 의료기기 취급 업소에만 제도를 반영하고 있어, 업체들이 보고 업무를 회피하려는 목적으로 안경업소에만 공급하는 방식으로 이어질 수 있다.
B의료기기업체 관계자는 "의료기기 취급 업소에만 엄격한 제도에 대한 완화가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또한 보고사항 및 항목에 대해서도 반드시 필요한 부분만 작성할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며 "정보시스템도 업체들이 잘 활용할 수 있게끔 개선해줬으면 좋겠다"고 전달했다.
이에 대해 한국의료기기산업협회 관계자는 "공급내역 보고제도로 인한 업계들의 어려움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다. 특히 1~2등급 의료기기는 영세업체들이 더 많기 때문에 향후 비용적, 인력적 부담을 호소하는 업체들이 더 늘어날 것으로 생각된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시스템 개선에 대해서는 의료기기정보원에서 충분히 반영할 수 있는 점이라고 판단된다. 협회측에서도 이에 대해선 업계의 의견을 전달하겠다"면서 "정부에서도 업계들과의 좌담회, 토론회 등을 통해 꾸준히 자리를 마련, 의견을 청취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출처 : 메디파나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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